사이고 다카모리는?

사이고 다카모리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사이고 다카모리는 1828년 가고시마 성하의 시모가지야초(현재의 가지야초)에서 태어났습니다. 막부 말기 사쓰마번에서는 가문의 지위를 불문하고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기치베는 하급무사 출신이었지만 사이고는 명군으로 칭송받는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수행원으로 함께 에도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마즈 나리아리카에게 발탁되었습니다.

사이고 다카모리 탄생지
야마카와 항|이곳에서 아마미오시마 섬과 도쿠노시마 섬으로 떠나다

문명 개화파로 알려져 있으며 가장 먼저 사쓰마번의 근대화를 진행시킨 나리아키라의 모습에 사이고는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리아키라가 급사한 이후 사이고를 둘러싼 환경은 악화되었고 결국 막부의 눈을 피해 아마미오시마(奄美大島) 섬에서 은거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오쿠보 도시미치 등의 탄원에 의해 사면되었지만 실질적으로 번정의 실권을 쥐고 있었던 시마즈 히사미쓰의 명령에 반하는 행동으로 다시 오키노에라부시마 섬(沖永良部島)에 유배되었습니다.

사이고가 역사의 무대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교토에서의 정변이었습니다. 사면되어 교토로 향한 사이고는 금문의 변을 일으킨 조슈의 무리들을 격퇴하고 제1차 조슈 정벌의 참모로 참가해 사쓰마번의 군사들을 이끌었습니다. 보신전쟁에서는 관군의 참모로서 옛 막부군에게 승리를 거둬 메이지 정부를 수립하는 데 있어 주역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
난슈 신사|사이고 다카모리 동상

메이지 유신 후 신정부의 참모로서 폐번치현, 징병제 등을 단행하였지만 조선에 대한 의견 차이로 오쿠보 등과 대립하게 되자, 관직에서 물러나 가고시마로 귀향하여 사학교를 개설하고 젊은이들의 교육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불만을 가진 사족들을 잠재우지 못했고, 결국 세이난 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규슈 각지에서 공방전을 치른 끝에 가고시마의 시로야마에서 자결하였습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좌우명으로 삼아 '하늘의 뜻을 깨닫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를 일생에 걸쳐 실천한 인물입니다.